이 소설의 번역에서 인용하는 성경은 본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새번역성경의 본문을 인용했습니다.

제5장

    저스틴은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이 조금 지났고 새벽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았다. 머릿속은 그가 받은 문서와 그 책의 주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의 행동은 이미 마르코스에게 자신이 긴장하며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보여주었다. 어쨌든 이렇게 매력 있고, 지적이며 동시에 흥미로운 여자와 몇 주 동안을 보낸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이곳에 서기 기술을 배우려고 왔다. 하지만 그를 정말 흥분시키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신학과 동서 교회들의 차이점을 토론하면서, 동시에 서로 장난도 치고 교제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정신을 나누며 한 달을 보내게 될 것이다.

    사실 여자 서기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웠다. 당연히 엄격한 루푸스는 반대했을 것이다. 교회에서의 여자 역할도 못마땅한데 필사실에서 일하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다. 루푸스의 생각대로라면 이것은 온 기독교를 혼란에 빠뜨릴 일이다. 그는 격론 중에서도 이렇게 소리쳤다: “고기와 술과 여자를 멀리하라!” 루푸스는 필사실에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형제였다. 저스틴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오히려 지금 루푸스가 감금되어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저스틴이 이 동방에서 온 방문자에 대하여 너무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을까? 이 여자가 혹시 그보다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높은 수준의 손님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넘쳐나는 신앙과 열정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서기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우고 온 것 같았다. 그녀는 저스틴 같은 사람과의 우정, 아니면 혹시 그 이상의 것에 관심이 있을까?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일을 시작해야 했다. 루푸스의 극단적인 생각들은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의 사명감을 가지고 오직 그것에만 신경 쓰는 것이 훌륭한 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아끼는 마가복음서를 그에게 서슴지 않고 맡긴 것도 이상했다. 이 책은 그녀가 아끼는 물건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그녀는 묵상하며 하나님께 다가가는 보물 이상의 것이었다. 그녀는 저스틴이 이것을 안전하게 보관하리라고 생각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이런 신뢰를 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혹시 저스틴의 열정을 보고 감탄한 것은 아닐까?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 책은 지금 저스틴 방의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아, 바로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잔 것이었구나!’ 그는 등불을 켜고 옷을 입은 후 필사실로 갔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그는 방해받지 않고 이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끈을 조심스럽게 풀고 첫 페이지를 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뭔가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가 읽어온 모든 마가복음서에는 앞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쓰여 있었다. ‘왜 이 알렉산드리아 책만 다를까? 거기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텐데?’ 아마 서기가 빠뜨렸을 것이다. 사실 헬라어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이라는 단어들의 약자는 끝에 같은 글자를 썼다. 이 알렉산드리아의 서기는 무심코 이 말들을 빠뜨린 것이다. 저스틴도 전에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요한복음서의 한 줄을 통째로 빠뜨려 주기도문의 한 부분을 “다만 악에서 구하지 마시옵소서!”라는 어이없는 말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마가 자신은 무엇을 썼을까? 그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초대교회들과 모두 교제했으나 후자를 직접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혹시 초대 서기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 의욕이 앞서 말 몇 마디를 덧붙인 것은 아닐까? 줄리아나는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알고 싶었으나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책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마가복음서의 다른 곳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확실하게 강조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마가는 예수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일까, 아니면 몇몇 이단들의 말처럼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일까? 그는 지금까지 마가복음의 첫 줄을 인용하여 이 주제를 토론했다. 하지만 이것이 가짜라면?

    또 다른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갔다. 이 책은 어떻게 결말을 맞을까? 그가 알기로는 마가복음은 두 종류의 결말이 있었다. 그가 알고 로마 교회가 받아들인 사본들은 모두 예수의 부활 후 나타나심과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내용으로 끝났다. 하지만 어떤 문서들에는 이 내용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로마 교회의 성서가 옳다는 것을 확신하며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인용도를 위해 제작되었어도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대표하는 이 책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그는 조심스럽게 책의 끝부분을 열어보았다. 마지막 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마가복음 16:8)

    저스틴은 당혹스러웠다. 이처럼 아름다운 책이 설마 실수투성일 수는 없었다. 만약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쓰인 원본이 틀렸다면 당연히 이 책도 틀릴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틀린 것 같았다. 이 마가복음서는 뭔가 제대로 끝난 것 같지가 않았다. 그의 스승께서 마가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끝이 난다고 언제나 강조하지 않았던가?

    이런 차이점들이 더 있을 수도 있었다. 저스틴은 다시 첫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자신이 로마 교회의 사본에서 베낀 마가복음서를 열어보았다. 리옹 교회의 이레니우스를 위해서도 이 사본에서 베꼈다. 이 사본은 그의 생각에 의하면 아주 권위 있고 정확한 책이었다. 그는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았다. 이른 새벽 시간에 그는 크고 작은 차이점들을 찾아보았다.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사역으로 시작되며 이 사역이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을 보여준다. 줄리아나의 마가복음서는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로마 사본에는 “우리 하나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라고 되어있었다. 저스틴은 교회 안에 이사야서의 번역문이 여러 종류인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어떻게 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정확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는 지금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사본을 주교의 부탁에 따라 필사할 처지에 놓였다. 일단 있는 그대로 필사하고 여백에 차이점을 기록해 놓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물론 세련됨과 아름다움은 떨어질 것이고, 이것은 줄리아나가 떠난 후에 할 수도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른 아침의 빛은 저스틴에게 그가 얼마나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손님이 오기 전에 잠을 좀 청하기로 한 그는 이 아름다운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그는 마르코스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그는 자신처럼 피곤한 친구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친구여, 방금 일어났는가? 자네답지 않네.” 마르코스는 말했다. “하지만 푹 자지 못한 건 사실이네. 새벽에 나는 내가 꾼 꿈 중 가장 환상적이고 생생한 꿈에서 깨어났네. 꿈속에서 나는 마른 잔디로 깔린 들에 있었는데 갑자기 거대한 사자 한 마리가 나를 해치려 들었네. 나는 무방비 상태였지.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큰 독수리가 나타나 나에게 오더니 나를 태우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네. 나는 위험을 벗어났고 독수리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 옆 풀밭에 내려주었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저스틴은 하품하면서 물었다.

    “아마 마가복음은 위험하고 요한복음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복음서는 위험하거나 안전한 것이 없지.”

    “그렇지. 우리가 마가복음이 독수리고 요한복음이 사자라는 것을 믿지 않는 한! 하지만 꿈이 무엇인가? 꿈은 잠시 스쳐 가는 것이네. 환상일 뿐이란 말이야. 그것은 모든 우리의 질문에 답을 알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네. 우리가 잘 때는 좋을지 몰라도 깨어날 때는 증오하는 것이 꿈이란 말일세.”

    “하지만 저스틴,” 마르코스가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조상들에게 꿈을 통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구약의 요셉에게도 꿈을 통해 말하셨고, 신약의 요셉도 꿈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던가? 야곱이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동방박사들에게 길을 보여주시지 않으셨나? 이렇게 함으로 그분은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셨네. 우리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실 수도 있지 않은가?“

    “글쎄, 자네의 꿈은 무시해서는 안 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어젯밤에 어느 꿈보다 더 환상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발견했네.”

    “무엇인가?”

    “나는 밤새 줄리아나의 아름다운 마가복음서를 읽어보았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이 도전적이란 말인가?” 마르코스가 물었다.

    “여길 보게나, 마르코스…” 저스틴은 위엄을 갖추었으나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여기 복음서의 첫 줄을 보게나. 결점이 눈에 들어오는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여기를 보게. 끝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난다네. ‘무서워서 아무말도 못한다’는 말로 끝나지. 두려움? 복음서가 이렇게 끝나도 되는 것이냐는 말일세! 놀라움과 경외는 있을 수 있으나 두려움은 아닐세! 또 있네, 하지만 줄리아나가 곧 올 것이니 우리는 우리가 약속한 대로 일을 시작해야 하네. 하지만 마르코스, 이건 분명히 오류가 있는 사본일세. 그녀가 보고 있는 한 우리는 실수들을 정정할 수 없네. 어찌하면 좋겠는가?”

    마르코스는 저스틴이 이토록 난감하게 행동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저스틴은 서기들의 우두머리로서 언제나 확신과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갈리아 여행이 그를 이렇게 흔들어 놓았던 것일까? 사실 이 책에서 생략된 말들은 분명 문제였지만, 마르코스가 보기에는 그냥 실수들이었다. 전혀 로마 교회에서 똑같이 베낄 이유가 없었다. 알렉산드리아 문서에 오류가 있는 것은 그들의 문제였다. 마르코스는 이 상황을 저스틴처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면 이 책을 베낀 후 이 문서와 사본을 바로 알렉산드리아로 되돌려 보내면 되지 않는가? 너무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우리 사본을 따르면 되네.”

    “하지만…, 만일에 하나 그들의 사본이 옳다면? 물론 처음과 끝은 우리 것이 옳다고 나도 확신하네. 하지만 이것은? 세례요한에 관한 이야기를 보게나. 여기서는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라고 쓰여 있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사야서와 같은 내용이네. 여기서는 그들이 정확할 수 있지 않는가?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야!”

    “저스틴,” 마르코스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것은 정말 사소한 차이점이네. 그냥 하찮은 것이지. 나는…”

“하찮다고?” 저스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문밖에 누군가 있었다. 두 명의 하인과 함께한 줄리아나였다. 남자 하인 한 명과 여자 하인 한 명이었으며 둘 다 옷을 잘 차려입었다. 모두 기대감에 찬 밝은 표정이었다.

    “우리 필사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스틴이 말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충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실 세 명이나 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르코스, 나가서 빵과 음료를 조금 더 사 올 수 있겠나?”

    “아니에요. 부담 갖지 마세요.” 줄리아나가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께서 식량을 보내주셨어요. 로다와 야고보를 소개해도 될까요? 그들은 우리를 도울 것이에요.”

    저스틴은 그들을 햇살로 가득 찬 필사실로 안내했다. 탁상 위에는 줄리아나의 책이 놓여 있었다. 펜과 파피루스 종이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모든 것들은 작업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었으나 저스틴의 마음만큼은 아직 정리되어 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비밀로 지키기로 하고 기쁜 표정으로 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책입니다. 제 것은 단순하고 투박한 문서가 될 것입니다만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파피루스 용지를 놓고 펜을 잉크에 적십니다. 그다음 문서 위에 앉아 펜을 최대한 바르게 세우려고 노력을 하지요…”

    “저는 약간 기울어진 것이 편하더군요.” 줄리아나가 대답했다. “문자를 동그랗게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모양을 조절하는 데도요.”

    바로 그때 저스틴은 속으로 생각했다. ‘필체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말씀 자체가 틀리면 무슨 소용인가? 완벽한 여백과 세련된 문자를 그리며 최고의 기술이 있어도 서기가 쓰는 말이 틀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는 생각을 다스리고 일을 계속했다. 조심스럽게 그는 쓰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다음 날에 저스틴은 주교를 찾아가 그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을 계획이었다.